블로거 2Z[이지]
블로거들은 나날이 글을 쓰거나 이미지를 올리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생산하는 글들은 때로는 혼잣말 같은 일기이기도 하고, 때로는 날카로운 칼럼이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목적과 형식이 달라도 그 속에는 적어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이다. 비록 다른 사람의 글로부터 착안한 논평일지라도 그 안에는 자신의 생각이 담겨 있으며, 다른 곳에서 발견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자신의 취사선택과 가치판단에 기반한 결과이다. 하버마스를 표절하자면, “자신의 주관성 속에 자기 자신을 펼쳐놓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처럼 블로그는 한 사람의 생각과 관심사를 꾸준히 읽을 수 있게 해 준다. 심지어 저자 자신에게도 비슷한 효과를 제공한다. 단지 실마리에 불과하던 생각의 단초가 텍스트로 출현했을 때, 그제서야 그는 자신의 생각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혹은 10년이 지난 어느 날, 자신의 2005년도 블로그 아카이브를 찬찬히 읽어보면서, 그는 새로운 형식의 자서전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블로그를 통해서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얻고 있고, 많은 친구를 만나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블로그는 그 자체로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블로그는 내 생각을 알려주고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도구, 즉 나 자신을 비추어주는 거울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평범한 거울은 아니다. 재미있게도 이 거울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오히려 그 점 때문에 나는 블로그에 떠오른 나의 모습을 읽어내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블로그에 글을 쓸 때 나는 적어도 두 가지를 고려하는데, 첫째는 독자 그룹이고 둘째는 내 글(text)이 놓여질 맥락(context)이다. 물론 모든 독자와 모든 맥락을 염두에 둘 수는 없다. 단지 나는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즉, 내가 만나기를 원하는- 독자층과 내가 가정한 맥락을 생각할 뿐이다. 어쨌든 이 두 가지의 변수가 나의 글에 개입하면서 손끝으로 나오는 글은 내 머릿속에 있는 글과는 상당히 다른 글이 된다. 어떤 부분은 삭제되고, 어떤 부분은 과장된다. 결국 ‘있는 그대로’의 내 생각이 아닌 가공된 결과물이 탄생되는 것인데, 글의 저자인 나는 다른 독자들과는 달리 그 글 속에서 숨겨진 내 모습을 추적할 수 있게 된다. 왜 내가 이 부분을 삭제했는지, 왜 내가 이 단어를 바꾸었는지, 왜 내가 A를 인용하지 않고 B를 인용했는지. 이 모든 것들은 나의 내면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물론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외면해버리면 그것으로 그만이지만.)
우리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징후적 사례들을 찾아낼 수 있다.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된다. 개인적으로 만났던 몇몇 블로거들과의 대화에서 오갔던 이야기들을 인용하고 나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고백할지 모른다. 한 블로거는 글을 쓸 제목도, 주제도, 내용도 다 정했지만 당장은 글을 올리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에 자신의 문장을 뒷받침할 ‘링크’를 찾기 위해 말 그대로 ‘고군분투’ 한다. 그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느끼지 못하는 불안감이나 괜한 걱정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방문객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숨은 욕망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단순히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싶어서였다고 말하더라도 큰 무리는 없다. 어쨌든 나는 그로부터 아주 솔직하고 재미있는 답변을 들었는데, 이처럼 자신의 블로깅 습관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생산적인 일이다. 맹목적이고 관성적이지 않은, 성찰적인 블로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겨우 한두 문단을 쓰는데도 며칠이 걸린다는 블로거도 만나보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계속 블로그에 글을 쓴다. 아마도 우리는 블로그를 통해 ‘무언가’를 얻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결과를 온라인으로 다시 접하면서 ‘자아의 발견’을 경험하는 것은 블로그 뿐만이 아니라 다른 플랫폼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블로그만이 갖고 있는 몇 가지 특성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블로그를 빈번하게 활용하고, 또한 애착을 갖게 되는 듯하다.
블로그를 주제로 논문을 쓰느라 거기에 몰입해있다가, (마감일 전날 밤에) 갑자기 흐름을 끊고 에세이를 쓰게 되니 다소 딱딱한 글이 나와버렸다. 다른 주제라면 그렇지 않았을텐데 주제가 ‘블로그’인 에세이였기 때문에, 그간 논문을 쓰면서 떠올랐던 생각들이 그대로 섞여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 내가 이런 내용의 글을 쓴 것에도 이유가 있을 테고, 거기에는 뒤로 숨어버린 내 모습이 담겨 있을 것이다. 이미 알아챈 독자는 지금쯤 웃고 있을 테지, 바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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