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 남쪽계단
블로그는 나의 영역이되 나만의 영역은 아닙니다. 오프라인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온라인에서도 내 영역이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지 골방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니까요. 해서 블로그는 글을 쓰는 나와 글을 읽는 그들 사이에 소통하는 ‘우리’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성숙해가기 마련입니다. 적어도 블로그를 통해 ‘우리’를 찾고 만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덧글과 트랙백으로 ‘우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사실 즐겁습니다.
어디까지가 ‘우리’인지를 정하기는, 그러나 그리 쉽지 않습니다. 블로그에는 내가 정한 ‘우리’의 경계를, 벽을, 울타리를 설정하게 해주는 기능이 없습니다. 그건 아마도 블로그가 열림과 관계의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술이기 때문일 겁니다.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은 그러나 때로 개인의 사생활과 충돌합니다. 나는 사람인지라 정보보다 개인 쪽에 기웁니다. 개인이 정보의 흐름을 구분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을 보다 선호합니다.
블로그는 그런 기술이 아닙니다. 블로그를 ‘집’으로 여기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블로그는 애초에 ‘광장’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장 큰 쓸모가 ‘광장’에 있다고 사람들이 모두 블로그를 그 용도로 써야 한다는 법은 없겠지요. 그래서 블로그는 ‘마당’으로 ‘전시장’으로 혹은 ‘카페’로도 쓰입니다. 기술이 담보해 주지 못하는 부분을 사람들이 메꾸고 때워 가면서 말입니다. 운영의 묘를 살리는 거죠.
블로그를 운영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글 거리를 내 안에서 찾아내거나 아니면 내 밖에서 빌어오거나. 나는 다른 이들의 생각을 빌어오는 게 내 삶을 말하는 것보다 편안합니다. 아직 충분히 사려 깊지 못하기 때문이 그 하나고, 보다 운신의 폭이 넓기 때문이 그 둘입니다. 내게 흥미있는 것들이 보다 넓은 ‘우리’와 공명하는 즐거운 우연은 블로그가 해주지 못하는 몫을 스스로 절제하고 미리 정보를 선별하는 나의 준비에서 비롯됩니다.
내 것이 아닌 글과 생각을 빌어오는 데에는 물론 적절한 절차가 필요합니다. 굳이 저작권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내 것이 아닌 걸 내 것 인양 말하고 다니긴 웬지 껄끄럽습니다. 지금은 링크냐 펌이냐 하는 구분 가운데 어디쯤에 ‘인용’과 ‘주석’의 길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기술적 구현은커녕 사회적 합의도 분명치 않은 지점이라 하루하루 다른 이의 글을 보고 생각을 빌어오는 일은 그대로 새로운 시도고 실험입니다.
그렇다고 블로그에 고도로 정형화된 형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느슨한 공감대 같은 게 있으면 좋겠죠. 기껏해야 미완성인 블로그를 값지게 만드는 건 완성과 미완성 사이 넉넉한 공간에 자리잡은 사람들의 개성이니 말입니다. 하니 일단 즐겁게 남용해 볼 일입니다. 그러다 보면 나름대로 초점이, 방향이, 시각이 생겨나기 마련이지요. 나는 그걸 블로그의 ‘밀도’가 높아진다는 식으로 표현하곤 합니다. 블로그를 다지는 거죠.
개인적으로 나는 스스로 조율한 정보를 가지고 ‘전시공원’ 같은 블로그를 꾸며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게 흥미로운 소식을 인용하고 주석을 달아두고는 방문하는 이들과 즐거운 우연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네들이 다시 이 동네를 찾고 가끔 한두 마디 인사라도 건네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우선은 공원을 손보며 다니는 발길이 뜸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지요. 그 발길에 다져지는 블로그를 뿌듯이 느끼면서 말입니다.
뭐, 딱히 정해진 형식도 완벽한 틀도 없는 게 블로그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그런 블로그를 사용하고 가득한 빈틈을 촘촘히 채워가는 모습을 보는 게 즐겁습니다. 낙서에서 논문, 그리고 일기에서 신문기사에 이르는 온갖 종류의 글쓰기가 공존하고 어렵지 않게 서로 맺어질 수 있는 여유와 유연함이 여기엔 있지요. 그 안에서 내 것 만은 아닌 이 공간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즐겁게 실험해 볼 일입니다. 블로그 세상에 발을 들여 놓았다면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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