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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블로그 세대를 기다리며 

엔비닷컴 (www.enbee.com) 박수만 이사

자기 성찰이나 홀로 일기를 쓰는 시간을 통해 자신을 온전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대화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확신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함으로써만 참으로 자기의 확신을 인식하게 된다.
- 폴 투르니에 (1899-1986)



1. 블로그 세대의 블로그 얘기

블로그를 접했던 사람들치고 블로그 얘기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없었고, 내 블로그 역시 시작하고 한동안 '블로그 얘기'로 가득 찼다. 시간이 흐르고 블로그에 대한 얘기는 이제 내 레이더망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나는 블로그를 통해서 많은 소식들을 접하고, 블로그 자체가 뉴스가 아닐지라도 그를 통해서 더 빠르고 관심있는 뉴스를 소비하게 되었다. 신세대, X세대, N세대, P세대에 이어 이제는 블로그 세대 라는 용어도 낯설어 하지 않을 만큼 대중화되었다. 이런 시점에 다시 블로그에 대한 단상을 끄적대자니 반갑고도 쑥스럽다.


2. 뒤죽박죽 블로고스피어

블로깅은 블로그를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라고 생각했던 옛 기억을 떠올리며, 재미있다고 느꼈던 얘기로 시작해볼까 한다. 그것은 바로 서로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합쳐지는 듯한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기사만 쓰는 줄로 알았던 신문사 기자가 자취생들을 위한 소박한 레서피를 소개하는 것이나, 인쇄된 지면을 통해서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잡지사 편집장이 어젯밤 자신이 응원하는 프로게이머의 승패에 연연하는 구어체 문장을 읽게 되는 재미는 실로 블로그가 안겨다 준 혜택이다. 한편 정기적으로 영화평론을 하기도 하고, 다양한 음악에 대한 소개, 멋진 사진작품들을 선보이는 누굴까 궁금해했던 블로그의 주인은 알고 보니 한 평범한 대학생이다. 이 역시 이런 매체를 갖게 된 그에게만 주어진 혜택이 아니라, 블로그가 우리에게 준 혜택인 것이다.

‘내가 관심있는 분야라면 누구보다도 더욱 잘 쓸 수 있지’라고 목에 살짝 힘을 주고 전문가처럼 글을 써볼 수 있는 곳. 딱딱한 한자어 대신 나긋나긋한 단어들로 ‘나에게도 이런 면이 있다구’를 보여주는 알려진 블로거들이 있는 곳. 이렇게 서로의 처지가 뒤바뀌어 재미있게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 블로고스피어의 묘미라 하겠다. (블로그 때문에 일자리를 잃어야 했던 분들께서는 새로운 직장을 구하셨겠지?)

이쯤 되면 블로그가 미디어냐 아니냐는 주제는 블로거들에게는 해묵은 얘기인 동시에 무의미하지 않은가. 여전히 블로깅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행위들을 두고 수박 겉핥듯 떠드는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3. ‘어머나, 그 분이 오셨어요!’

쓰는 것,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댓글로 그 첫 한마디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짜릿한 경험이었는지. 댓글로 끝나지 않고 트랙백을 해가며 블로고스피어라는 커다란 토론장에 글 하나를 엮어나가며 대화를 하는 페이지들을 빌드하는 내가 얼마나 기특해 보이던지.

자발적이고 독립적으로 시작한 글쓰기는 모두 그걸 대화로 인정하는 듯했고, 틀린 점을 발견하면 조심스럽게 알려주고, 주인장은 올렸던 글에 스트라이크 선을 찍찍 긋고 자신있게 틀린 점을 인정하기도 했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면, 소리없는 말이 십만리를 간다. 여기서 소리없는 말이란 하이퍼링크를 일컫는다. ‘최저 커멘트 블로그’ 댓글 하나 없는 블로그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소리없는 조용한 대화, 하이퍼링크의 대화는 쉽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블로그는 흩어져있지만 연결된 커다란 열린 공간을 만들었다.

누구라도 원하면 들어올 수 있는 그 곳.
무엇이라도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그 곳.
어느 누구 한명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만들어 낸 그 곳.


4. ‘내가 만든 컨텐트’로 풍요로운 인터넷

블로그는 로컬의 정보들을 인터넷으로 끌어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대화가 시작되고 그 파급효과는 개인 컴퓨터나 닫혀 있는 커뮤니티에 고이고이 저장되어 있었을 컨텐트들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 컨텐트는 또 다른 시각을 가진 이들을 자극하고 새로운 컨텐트를 촉발시킨다.

블로그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것
- 다른 점을 느낄 수 있는 것
- 새로운 것을 소개받기

블로그에서 내가 싫어하는 것들은,
- 퍼담기
- 똑같은 무늬의 얘기하기

개개인이 직접 만들어낸 컨텐트가 인터넷을 채우는 비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고맙게도 개인 컨텐트가 인터넷을 채우는 비율을 높여주려고 ‘펌질’은 계속 되고 있다. (내가 만들지 않았더라도 누군가 ‘개인’이 만든 컨텐트의 비율은 높아지지 않는가). 한차례 시끄러웠던 퍼뮤니케이션은 블로그 세대의 현상이며 우리가 극복하지 못한 한계라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5. 블로그로 시작되는 포스트블로그 세대

얼마전 방영한 KBS스페셜 – 호모 이미지쿠스를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아이들이 감각의 연장으로서의 도구, 인터넷 디카 등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신의 시각의 연장선으로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되어 주절주절 말이 필요없이 찰칵찰칵 순간을 담는 것으로 자기 표현을 하는 아이들.

블로그를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하게 된지가 얼마나 되었나. 블로그 이후를 점쳐보려는 의견들은 모두 섣부르다. 똑같은 디카로도 필름카메라같이 사용하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로 새롭게 활용할 수 있듯이, 이 아이들은 블로그라는 도구를 더욱 빛나게 할 것이다. 그 도구를 통해 자신의 확신을 표현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확신을 더욱 확실히 인식하게 될 것이다.

포스트블로그 키드(postblog kids), 그들이 만들어갈 세상을 즐길 수 있을 만큼만 뒤떨어지지 않으면 좋겠다는 작은 희망을 가져보련다.

박수만님 블로그 바로가기
by 블로그 | 2005/04/25 14:34 | 블로그 에세이 | 트랙백 | 덧글(14)
Commented by 修身齊家萬事成 at 2005/04/25 18:08
헤에?? 반갑습니다. 이런 얼굴이셨군요. ^^;
Commented by litconan at 2005/04/25 19:24
만박님이시다!!!
Commented by erehwon at 2005/04/25 21:03
꼭 이런 말을 써줘야할 것 같아요. ‘박수만님은 포스트블로그 시대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
Commented by 만박 at 2005/04/25 21:27
문화상품권 10만원어치 빨랑 보내주세요
Commented by 광대물고기 at 2005/04/25 23:38
어디서 본 사람이다 했더니..
만박님 맞군요... ^^&;;
Commented by jely at 2005/04/26 10:27
어쩌나... 10만원권 아닌데... ㅠ.ㅠ
Commented by 만박 at 2005/04/26 13:15
수신제가만사성님/ 다른 블로그에 와서 댓글을 달자니 제 글임에도 불구하고 약간 어색하네요. 제 얼굴 보는 것도 그렇고. 반갑슴다~

litconan / 요, 릿코! 오랫만!

erehwon / 포스트블로그 키드 두명을 키우고 있죠. ^^

광대물고기 / 얼굴을 보여주세요.

jely / 에이~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져요~
Commented by 모카 at 2005/04/26 21:08
이글루에 만박님이!! 누군지 첨엔 못 알아봤어요. :)
Commented by sirocco at 2005/04/26 22:04
'블로그 세대'도 이제 옛말이 되는 건가요. 신기해라;;
Commented by 광대물고기 at 2005/04/26 23:05
네.. 언제 소주한잔하죠
Commented by 만박 at 2005/04/26 23:34
반상회 분위기네요. 모카님도 만나고, 시로코님도 보고. 소주한잔은 매봉역에서 언제든지. ^^
Commented by codian at 2005/05/01 03:10
만박님, 글발 좋습니다.
이사되셨군요. 축!
Commented by 만박 at 2005/05/01 20:28
codian님 포스트블로그 키드 잘 키우시게~
Commented at 2005/09/2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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