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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는 높게 쌓은 벽돌담에 낸 창문입니다. 

친애하는 노팀장님 남편

내가 가장 열중하고 있는 일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나를 보면 회사에서 만드는 MP3 Player를 한대라도 더 내다 팔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뛰어다니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사실 나의 주된 일은 ‘벽돌’로 담을 쌓는 것이다. 기분 좋은 날은 하루에 한 장정도, 두렵거나 서글픈 날은 하루에 몇 백장씩도 쌓는다.
나는 지난 30여 년 동안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외부부터 나를 숨기기 위한 벽돌담을 쌓는 일에 지극 정성으로 매달려 왔다. 하지만 그 벽돌담이 높아질수록 보호받고 있다는 안도감보다는 갇혀 버릴 것 같은 두려움과 무료함이 크게 느껴졌다. 벽돌담이 차오르는 속도를 줄여보려고 친구들과의 장난과 수다에 매달려 보았고, 밤늦도록 라면 한두 가닥과 김치 몇 조각만 남은 식어버린 찌개를 사이에 두고 열변을 토하기도 했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높이 쌓아 올린 벽돌담 뒤에는 뭐가 있을까? 부모님께서 돈 없다고 사주시지 않았던 야구글러브와 자전거, 수많은 비행(飛行)으로 찌그러진 전기밥솥, 어머니의 강요로 버스 탈 때마다 6살이 되던 창피함, 동네 형들에게 두들겨 맞았던 기억, 학교 앞 문방구에서 감행한 절도사건, 매년 새롭게 나타났던 짝사랑의 그녀들, 불합리하게 느껴졌던 현실들, 기무부대 상사의 능글맞은 눈빛, 아이스박스와 함께 무너졌던 자존심, 기대와 달랐던 회사들,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살고 있는 여인, 생각이 다른 직장상사들, 혼자서 불만을 삭히고 버린 술병과 담배꽁초들 무엇보다도 점점 빠르게 늘어가는 수많은 콤플렉스 등 진작에 내다버렸어야 할 것들이 부지기수로 널려 있다.

벽돌담을 왜 쌓을까? 아주 어릴 때는 생각이 떠오르면 곧장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살았다. 더 나이 들어서는 또래 아이들과 함께 입시전쟁에 내몰려 책상에 고개를 묻고 살도록 강요당했다. 좀더 나이가 들어서는 서로의 입장을 강요하면서 평행선만 달리던 이들과 소모적인 논쟁을 하거나, 아주 가끔은 운동도 할 겸해서 정작 내 이야기를 들어야 할 이들은 체육관에서 호텔에서 축제에 빠져 있을 때 종로에서 신촌에서 애꿎은 전경들하고 매운 냄새를 맡으며 숨바꼭질을 하곤 했다.
드라마의 중요한 대사를 듣지 못하게 하던 귀찮고 시끄러운 아이는 다음 시즌 선동열 선수의 방어율을 학점으로 예언하는 열등생으로 컸다. 다시 그 열등생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을 모르는, 윗사람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말을 못하는 월급쟁이로 커서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주위 사람들의 말을 귀가 따갑게 들으면서 20대를 마감했다. 남들보다 한참 늦어서야 내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서운함을 (공식적으로는) 품지 않게 되었고, 내 넋두리로는 사소한 변화도 이끌어 낼 수 없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였다.
이제는 적당히 나이가 찼나 보다. 내 알량한 자존심도 강해지고, 별것도 아닌 나를 딛고 올라서려는 이들도 있고, 알고는 있으되 말해서는 안될 대외비도 많아지고, 나의 말을 통해서 무언가를 캐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아진다. 그럴수록 젖은 낙엽처럼 바닥에 엎드려 입을 굳게 닫고 있는 것이 무식(無識)을 드러내지 않고, 결과에 대해 뒷탈과 책임을 피해갈 수 있는, 그저 흘러가는 분위기에 무임승차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 믿으면서 몸소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

벽돌담에 창문이 왜 필요할까? 높다란 벽돌담이 답답하다면 허물어 버리면 되지만 지금도 나는 내가 쌓은 벽돌담을 허물 용기가 없다. 아니 그럴 의지가 없다는 것이 옳다. 그 동안 쌓은 정성이 아까운 것은 아니다. 다만 모습은 다르지만 각자의 벽돌담을 쌓고 사는 것이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해서이다. 하지만 벽돌담에 숨어서 고립되는 두려움에서만은 벗어나고 싶다. 그렇다면 작게라도 문을 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벽돌담에 누군가의 출입을 목적으로 한 어떠한 시설도 받아 들일 생각도 없다.
답답함을 덜 수 있는 방법을 이리저리 찾다 발견한 것이 제한적으로나마 밖을 볼 수 있고 나 자신의 노출도 가능한 블로그라는 작은 창문이다. 나는 블로그라는 창문을 통해서 쏟아지는 햇볕도 받고, 떨어지는 빗물도 만지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본다. 창문을 살짝 열어 놓으면 누군가의 바보 같은 중얼거림이나 사람들 사이의 대화 내용도 엿들을 수도 있고, 맛있는 음식 냄새도 맡을 수 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이제 창문을 사이에 두고 몇몇 사람들과 마음 편하게 대화도 나눈다. 가끔 심심할 땐 남의 창문 근처를 어슬렁거리면서 주인장은 뭘 먹고 있는지, 뭘 읽고 있는지, 뭘 쓰고 있는지, 왜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지, 누군가를 어떻게 사랑하는지, 기억하고 싶은 날은 어떻게 보내는지 훔쳐본다. 누군가도 내 창문을 통해서 나를 살펴보고 있기에 별 것도 아닌 내 삶에서 뭔가 보여 줄만한 재미있는 것들이 있나 뒤적거리고, 생각없이 내다 버리기 급급했던 소소한 것들에도 관심을 쏟고, 산만하던 내 생각도 정리해서 보란 듯이 적어서 창가에 붙여 놓는 즐거운 버릇이 생겼다. 점점 유치해지고 있으니 블로그와 사랑에 빠졌다고 볼 수도 있다.
내 벽돌담 뒤에 숨기고 싶던 지저분한 것들이 다른 많은 사람들의 그것과 비슷하다여겨질수록, 드러낼 만큼 청소가 될수록, 내 스스로 성숙될수록 창문을 더욱 크게 키워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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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로그 | 2005/05/09 17:01 | 블로그 에세이 | 트랙백(1) | 덧글(9)
Tracked from Kane.H at 2005/05/15 21:56

제목 : 문득
블로그는 높게 쌓은 벽돌담에 낸 창문입니다. 에반게리온에서 얘기했던 사람과 사람간의 단절을 떠올렸다. 블로그가 좋은 것은 문을 열어놓고 남들을 기다리는 홈페이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덧글 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방문자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포스팅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것이라고 난 생각하고 있다. 웹에 글을 올린다는 일의 전제로 깔려있는 것은 누군가가 봐 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다만 홈페이지가 '집'을 '방문'하는 것의 웹化된 행동이라면 블로깅은......more

Commented by Forthy at 2005/05/09 20:32
우와와와!!! 정말 멋진 글입니다! ^- ^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푸른마음 at 2005/05/09 22:21
사람들이 겪는 딜레마를 이렇게 멋지게 표현해 내시다니....
역시 에세이 기다린 보람이 있습니다!
Commented by kelo at 2005/05/10 10:11
오~~ 사진이 왠지 블로그에 있는것과는 분위기가 많이 틀려 보입니다. 좋은 곳에서 찍은 사진이라 그런지.. 훨씬 더 밝아보이고 하는군요. ^^;
Commented by 곰부릭 at 2005/05/10 10:17
축하합니다~!! 멋지셔요^^
Commented by SoGuilty at 2005/05/10 11:06
잘 새겨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려요. :)
Commented by 장두이 at 2005/05/10 16:16
훔... 멋지세요..^^

예전에 어떤분 이글루에서 봤었는데.

과연 우리는 어떤 창을 내고 있는지..

그냥 텅빈 창틀을 내는건지.
투명한지 불투명한지
여닫이인지 미닫이인지
밖으로 열리는지 안으로 열리는지..

사람마다 모두 다른것 같아요..^^
Commented by iRiverCEO at 2005/05/10 18:58
3킬로만 빼면 저 인물이 나옵니다.
저 표정은 '친애하는 노팀장님' 앞에서 의무적으로 짓고 있어야 하는 표정이구요.
Commented by 사냥감이듬뿍 at 2005/05/13 13:19
레이먼드 챈들러 "하이윈도"의 의미를 여기서 읽고 가네요.
그렇군요. 우리는 모두들 높은창을 내고 살아가는군요.
Commented by daezan at 2005/05/16 14:27
그 창문을 통해서 시원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이 들어왔으면 좋겠네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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