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가디록
그리 멀지 않은 어느 때,그리 멀지 않은 어딘가...그 세상은 온통 거미줄 비슷한 것으로 꽉 차있다.거미줄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어떠한 규칙에 의해 아름답게 짜여진 진짜 거미줄을 말하는 건 아니다. 이 거미줄에는 규칙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거미줄끼리 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 가운데 있는 작은 도형이 점점 커지면서 밖을 향해 뛰쳐나가는 듯한 모양과 그 모양들을 서로 이어주는 선들로 이루어진 보통의 거미줄과는 달리,이 거미줄에는 한 가운 데 있는 작은 도형을 늘려놓은 듯한 모양 없이 한 가운데 지점으로부터 뻗어나오기만 할 뿐이다.점과 그 점으로부터 뻗어나오는 선들로만 이루어진 거미줄이라고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어떤 점에서는 수많은 선들이 나가고 들어간다. 어떤 점에서는 몇개의 선만이 오가고 있다. 어떤 선들은 때로는 사라진다. 사라지는 선이 있듯이 사라지는 점들도 있다. 물론 그만큼 새로운 점들이 나타나고,새로운 선들이 그 점을 다른 점과 이어주곤 한다. 한마디로 살아있는 선과 점들의 공간이랄까? 이 살아 움직이는 선과 점들이 어쩌면 세상을 바꿀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먼 옛날에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상대와 일정 거리 안에 있어야 했다. 상대의 목소리와 나의 목소리가 서로에게 전달될 수 있기 위해서는 서로의 목소리가 충분히 들릴 수 있는 거리 안에 서로 함께 있어야 했고,또한 서로 같은 시간에 그 일정 거리 안에 있어야만 했다. 세상이 조금 더 좋아지면서 편지라는 것이 등장했다. 더 이상 뜻을 전하기 위해 꼭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상대가 지금 자신의 옆이 아니라 옆나라에 있다 하더라도 편지를 통해서라면 얼마든지 자신의 뜻을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헌데 여기에도 역시 문 제가 있었는데,그건 편지가 전달되는 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세상이 좀 더 좋아지면서 전화가 나타났다. 이제 사람들은 멀리 떨어진 사람한테 아주 급한 일을 전달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며칠씩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를 필요가 없어졌다. 허나 전화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동네 사람들 모두에게 내 얘기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기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을 모두 전화기 앞으로 모이게 하여 그 작은 수화기에 귀를 대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내 얘기를 직접적으로 들은 사람이 이차적으로 다른 사람들한테 전달할 수야 있겠지만,한번 누군가를 거쳐 전달하는 정보는 중간에 내용이 바뀌거나 일부 정보 가 사라지거나 혹은 중간에 살이 덧붙여질 가능성이 있다.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블로그라는 것이 나타났다. 뭐,블로그라는 것이 이쪽에서 아 무리 포스트를 올려도 저쪽에서 포스트를 보지 않으면 그만이니 두 사람,혹은 그 이상이 나누는 대화라고 보기에는 다소 어려운 구석이 있다. 그러나 블로그는 전화와는 달리 한번에 여러 사람한테 뜻을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 둘만이 나누는 속 삭임이라기 보다는 광장에서 크게 외치는 연설이랄까. 헌데 이 연설은 진짜 광장에서 진짜 목소리로 전달하는 그 연설과는 다르다. 진짜 광장에서 누군가가 크게 외치는 연설은 대부분의 경우,몇몇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그뿐인가. 그 광장에 사람들이 아주 많이 모여있다면 내 의견이야 어찌되었건 간에 다수의 의견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진다. 이를테면 나는 저건 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도 옆에서 다들 박수를 치면 나 역시 자연스럽게 그들을 따라 박수를 치게 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멋진 의견이라 생각하더라도 옆에서 다들 야유를 보내면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게 되기보다는 자신이 틀린건 아닌가 되짚어 보게 되는 것이다.
허나 블로그에서 펼치는 연설은 조금 다르다. 블로그를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연설 을 할 수 있다.(게다가 단상에 마이크에 준비할 게 많은 진짜 광장 연설과는 달리 블로그는 만들기도 쉽다!) 또한 자신이 그 연설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건 간에 그 생각을 비교적 자유롭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자신이 그 주장에 찬성하건,반대 하건,아니면 아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건 간에 상관없이 그 의견을 코멘트로 달거나 트랙백을 보내거나 아니면 뭐...자신의 블로그에 그냥 포스트로 올리거나 아니면 혼자 생각하거나 하는 등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발전시켜 나가건 주 변 사람들의 영향에 비교적 덜 휘말릴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처음부터 이렇게 복잡한 언어를 가진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반가우면 꼬리를 흔드며 짖어대는 강아지처럼 바디 랭귀지와 우우웅거리는 울음 비슷한 소리로 의사소통을 했을 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은 좀 더 복잡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복잡한 대화를 나누면서 인간은 보다 복잡한 감정과 생각을 발전 시킬 수 있었던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좀 더 시간이 지나 인간은 글이라는 것도 가지게 되었다. 글이라는 이 의사소통 수단이 인간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글이라는게 나오면서 인간은 기록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리하여 역사가 시작되었다. 책이라는 것도 쓸 수 있게 되면서 지식도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새로운 통신 수단은 아니지만 어쨌든 금속 활자라는 것이 나오면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블로그는 그들의 뒤를 잇는 하나의 새로운 의사소통 수단이 아닐까.
이 새로운 의사소통 수단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 어떤 의사소통 수단보다도 더 큰 일을 하고,더 큰 변화를 가져올 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새로운 의사소통 수단에 밀려 조용히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일 지도 모르고,이미 많은 일이 일어난 것일 지도 모른다. 다만 좀 재미없는 교과서같고, 전형적인 전래동화같은 결말 하나만 내자면, 우리가 바로 그 모든 가능성을 만들어 가고 있는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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