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창으로 보는 세상은 모두 네모일까? 일단 눈부터 떠야지
블로그를 쓰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창(窓)을 갖는 것과 같다. 그 창이 네모이기 때문에 세상을 네모로 바라보게 되는 건지 혹은 원래 세상이 네모라서 창의 모양도 네모인 지 판단을 해야긴 하지만 어쨌든 블로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창이 되어 준다.
새로운 창에 대해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그 창의 모양이 어떻고 쓰임새가 어떻고 다른 창과 비교하여 무엇이 좋고 나쁘다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창이 왜 필요한 가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통계학적으로, 정치학적으로, 공학적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이렇게 창은 원래의 의미를 찾기 위한 과정 속에서 더 나눌 수 없는 조각으로 분해되고 그 조각 하나하나에 몰입한 사람들에 의해 재정의된다.
그 분석이 지칠 즈음에 사람들은 생각한다, "이 조각이 원래 어디에 붙어 있던 거지?"
우리는 뭔가를 알고 싶을 때 가장 먼저 그것을 '정의(定義)'하려고 한다. 정의를 하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다. 선문답을 나누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그리 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좀 더 효율적이며 생산적인 대화를 위해 우리는 정의를 하고 정의를 찾고 정의를 배포한다. 그리고 그 정의의 끝에서 생각한다,
"이 정의를 어디다 쓸까?"
굳이 블로그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세상을 바라보는 여러개의 창을 갖고 있다. 바람부는 거리에서 한 시간을 기다려도 두근거리는 마음 여전한 '애정의 창'도 있고, 믿고 실망하고 배신 당하고 존경하고 지지하고 반대하는 '정치의 창'도 있고, 손끝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온 정신을 몰두하게 만드는 '영화의 창'도 있고, 비트와 리듬과 음계와 화성과 악기와 소리와 탄성과 하모니와 불협화음이 공존하는 '음악의 창'도 있다. 우리는 블로그가 아니더라도 이미 세상을 바라보는 많은 창을 내 속에 갖고 있다.
그러니 왜 굳이 블로그를 정의하겠는가. 하지만 만약 그것이, 블로그를 정의하고 그것이 어떤 모양의 창이며 어떤 특징이 있고 어떤 역할을 하며 그리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창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 가를 알 수 있는 것이 우리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굳이 시간과 노력과 대화와 학습을 통해 블로그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블로그를 써야 할 필요가 있고 블로그를 나눠야 할 이유가 있고 블로그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늘 가치있는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 그렇다고 가치없는 일이 갑자기 가치있는 일이 되거나 그것을 보존하고 존중해야 할 이유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치있고 가치없는 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블로그를 정의할 때, 혹은 블로그에 대해 생각할 때 그것을 먼저 보라. 내가 판단하는 가치의 기준, 거기서 대부분의 '할만한 일'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누군가의 행위를 존중하고 그 행위를 통해 자신을 돌이켜 보는 것은 우리가 지금도 기억하는 모든 위대한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했던 일이다.
우리라고 해서 그런 반복적 노력을 하지 않고 무언가를 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건 블로그에 대한 이야기이며 또한 삶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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