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요Heeyo, 아직도 날개는 하나
오래전에 PC통신 동호회에 풍덩 빠졌을 적엔, 밤을 새우도록 채팅하고 글을 썼다. 널리 인터넷이 상용화 된 이후로는 까페, 커뮤니티, 홈페이지, 여러 곳에서 활동하면서 가벼운 글, 잡담, 진지한 글, 이곳 저곳에 참으로 많은 글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서서히 인터넷 세대로 접어들면서 다들 자신의 흔적을 이곳 저곳에 새겨 놓았을 것이다.
여기 저기 퍼져 있는 그 모든 글은 나 자신의 모습을 하나씩은 담고 있는 조각들이기에 모아 두고 싶은 마음도 꽤나 많았다. 그러나 그 배경에서 떼어내 모아둔다고 해도, 그런 단순한 수집은 파편더미일 뿐이고, 워낙 넓은 웹페이지 세상에서 다 모아둔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가능하지 않다.
별 수 없이 가끔가다 뒤져보는 정도로 만족했고, 그렇게 오랜만에 되돌아보는 옛 글에서 그 시절의 내가 어땠었는지를 관찰하며 재미있어하곤 했다. 어쩔 때엔 밤을 새워 넷을 돌며 내가 쓴 글들을 추적하고 뒤적였고, '저 땐 저랬구나' 하고 감탄하면서 지금 달라져버린 생각들을 과거의 내 생각과 대조해보곤 했다.
지금은 그런 '글찾기수색' 을 하지 않는다. 이곳 저곳 새겨진 글들을 찾아 모으는 것을 지금도 가끔 하긴 하지만, 예전보다는 확실히 줄었다. 대신 나의 옛 모습을 보고 싶을 때, 블로그에 올린 만 2년치, 2천 몇백개의 포스트를 읽는다.
아주 오래된 것도 아닌데도,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의 차이가 보인다. 블로그에 기록된 '과거의 나' 는 단순한 파편의 모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있다. 단절되지 않고 이어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러 사건이 쌓이고 넘고 쌓이고 넘으며 내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그 이유와 동기와 각각의 결론이 기록되어 있으니까. 거기서 나는 해마다 찍은 사진이 담긴 앨범을 보듯 성장과 굴곡을 볼 수 있다.
별 생각없이, 과거에 사용하다가 잊고 묵혀둔 닉네임 중의 하나를 꺼내서 블로그를 시작했던 것이지만, ‘히요’ 라는 이름아래 기록이 쌓여가면서 다짐하게 됐다. 불편한 순간에도, 부끄러운 순간에도, 힘든 순간에도, 아픈 순간에도 '히요' 라는 이름을 버리고 다른 새로운 공간으로 날아가버리지 않도록 해봐야겠다고. 아무리 멍청하고 바보같은 짓을 하더라도 그 이름을 그대로 지니고서, 시간과 역사를 그대로 이어나가 보자고. 만 2년을 가득 채운 지금, 그 다짐이 만들어 낸 나의 '흐름' 을 볼 수 있게 됐다.
2003년에 블로그를 열던 히요와, 2004년의 히요와, 2005년의 히요는 굉장히 많이 달라졌다. 고집스럽게 변치 않는 부분도 보이고, 변한 부분도 보이고,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변해갔는지도 보인다. 나 자신이 지난 2년간 어떤 식으로 생각이 바뀌고 어떤 식으로 삶이 바뀌었는지 관찰하는 게 신기해서 시간이 지날 수록 블로그는 보물이 되어간다.
역시 블로그는 이름 그대로 Web Log라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웹에서 생활하면서 내가 쓴 모든 글들이 파편적으로 흩어지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블로그' 를 중심으로 기록되고 있다. 꼬박꼬박 포스트를 작성하는 사람일수록 과거의 어떤 순간에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글을 썼었는지 훨씬 더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랬던 생각이 어떤 사건을 거쳐 어떤 식으로 변해갔는지까지도.
새로이 누군가를 알게 되면 그 사람의 블로그 처음부터 하나씩 페이지를 넘기며, 그 사람의 역사와 그 사람의 연대기를 읽게 된다. 블로그에서 한 개의 글만 읽고 사람을 판단한다면 너무 성급하고 부적절한 것이겠지만, 블로그이기 때문에 시간순으로 하나씩 그 블로그 주인의 생각을 따라 읽어갈 수 있어서 오히려 여타 커뮤니티 게시판 등지에서 접하는 단편적인 글보다 더 총체적인 주인의 생각에 접근할 수 있다. 모든 포스트가 카테고리 상관없이 시간순으로 쌓여 있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따라갈 수 있으니.
Web Log의 의미를 전혀 생각지도 않은 채 우연히 시작한 블로그 라이프는, 시간이 갈수록 Web Log로서의 개성을 톡톡히 발휘하고 있다. 어느새 쌓여있는 수많은 포스트, 이웃한 수십 개의 블로그와 그 속에 담긴 수천 개의 포스트, 그 시간동안의 나의 모습,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온 이웃들의 모습에서.
‘눈을 떴을 때 갑자기 40살이면 어떻게 하겠는가’ 라는 자작문답에서, 나는 ?'외날개 히요' 를 아직 운영중인지 확인한다?고 답했던 적이 있다. 내 삶의 흐름을 2년만 지켜봐도 이렇게 신기한데, 수 십 년을 담은 기록을 훑어보는 건 또 얼마나 재미있을까.
블로그는 1인 미디어이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통로고, 갖가지 소중한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되고, 수많은 좋은 점들을 가진 곳이라고들 평한다. 그 수많은 장점도 빛나는 부분이지만, 내게 있어 블로그의 가장 큰 의미는 역시 Web Log 인가보다.
자신의 역사를 담은 Log, 일시적으로 사용하고 버리고 마는 수많은 인터넷 페이지 중의 하나가 되어버리지 않도록, 애정을 쏟고 있다. 방문하고 글쓰고 뜸해지기를 반복하는 넷라이프에서, 오롯이 한 공간 내 거점이 되어 내 삶을 기록하는 곳이 있다면 내게는 그곳이 바로 블로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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